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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한국사회 대세된 '혼밥'... 외로움? 자유로움?
이름 asamo(관리자) 날짜 2018-05-04 오후 4:01:04
조회수 622 파일 -

주간경향

혼밥의 일상화 ‘외로운 한국인’


자발적 선택 아닌 고독한 생활
… 우울증·비만 등 건강에 적지 않은 악영향

떨어진 반찬 조각, 국물을 흘린 자국. 한 대학의 청소노동자 유모씨(52)가 점심시간이 지나고 화장실을 청소하러 들어가면 심심찮게 발견하는 ‘혼밥’의 흔적이다.
“화장실 변기칸에 휴지통을 없앤 뒤로 도시락이나 컵라면 용기를 그냥 버리고 가니까 좀 치우기가 번거롭죠. 어떤 때는 ‘쩝쩝’ 하면서 먹는 소리가 나다가 인기척이 나니까 조용해지는데, 모른 척 나와서 다른 일부터 하고 들어가요.”
유씨는 이들이 먹고 버린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것이 번거롭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도 간다고 말했다. 유씨 역시 이전에 화장실 옆 청소도구 보관장소에서 혼자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씨는 지금 대학 청소를 맡은 업체와는 다른 파견업체 소속일 때 아파트단지에서 청소를 한 적이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이 있는 대학과는 달리 당시 아파트단지에는 딱히 휴게실이나 밥 먹을 곳이 없었다. 관리사무소 화장실 옆 청소도구 보관소가 유일하게 남 눈치 피해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이었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유씨는 “그때 내 처지와는 다르겠지만 학생들도 막상 혼자 있을 만한 공간이 별로 없어 보이더라”며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해서 그렇게까지 밥을 먹는 게 안쓰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고독지수 78점

‘혼밥’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은 현상이 됐다.
‘혼밥’과 ‘혼술’에 이어 여러 일상적인 활동들을 혼자서 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혼족’의 출현은 개인화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고독한 삶에 익숙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혼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이 겪는 어려움 역시 늘고 있다. 사회적 환경과 인간관계의 변화로 다가오는 외로움이 보다 취약한 여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잖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밥 먹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서울 노량진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박영선씨(28)는 하루 세 끼를 모두 혼자 먹는 편이다.
식사시간을 아끼기에도 좋고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들이는 노력도 줄일 수 있다. “이 동네에서는 다들 혼자 밥 먹으니까 혼자 밥 먹는 걸 신경쓸 이유도 없고, 다른 데선 혼자 먹기 힘든 메뉴도 파는 식당들이 많으니까 굳이 다른 사람들이랑 밥 먹어야겠다며 ‘밥터디’를 만들어서 같이 식사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드물죠.”

점심은 ‘고시식당’에서 한 달치 식권을 끊어 먹고 저녁은 대체로 살고 있는 고시원에서 간단히 차려 먹는다. 그런 박씨도 혼자서 오랜 기간 시험준비에 매달려야 하는 생활에는 스트레스가 쌓인다. 친구나 스터디 구성원을 만나 기분을 풀 때도 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시험부담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 결국 혼자를 택한다.
박씨는 “스트레스가 심할 때도 혼자서 치킨이나 피자에 맥주 한 잔 하며 달래는 편”이라며 “혼자 지내는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지만 사실 그렇다고 이 생활을 즐기는 건 아니고 불가피하게 이런 생활을 유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혼자를 강요 받은 것은 아니더라도 결국 혼자서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체 가구형태 가운데 1인가구의 비율이 30%를 넘어서 가장 흔한 가구형태가 된 한국 사회의 현실은 고독이 자발적인 선택지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심리학자들이 현재 한국인의 심리상태를 진단한 결과 고독지수가 78점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도 이를 방증한다.

한국임상심리학회와 한국심리학회 소속 심리학자 317명이 참여한 올해 4월의 ‘대한민국 고독지수’ 조사를 보면 한국 사회의 고독지수는 100점 만점 기준에 78점으로 나왔다.
또 고독함이 정신적 문제 및 사회문제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에선 83점이 나왔다.
서수연 성신여대 교수(심리학)는 “과도한 경쟁과 기술의 발달로 대인관계의 상호작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나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생겼고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며 “고독감을 더 많이 느낄수록 우울 혹은 불안과 같은 부정적 정서가 증가하고, 이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면 정신적·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고독감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 바탕에 하나의 주요한 요인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한국 사회의 고독감이 증가한 원인으로는 개인주의의 심화(62.1%)를 비롯해 계층 간 대립 심화(54.6%), 장기화된 경제불황(48.3%), 사회적 가치관의 혼란(45.4%), 온라인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변화(36.3%) 등을 지적했다.

혼밥으로 대표되는 개인 중심의 삶이 곧바로 사회적 정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까지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1인가구가 늘어나는 등 사회적 변동이 개인의 심리는 물론 신체적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혼밥을 하는 비율이 급증하고 혼밥 인구 중에서 건강상의 문제를 겪는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조사 결과도 있다. 혼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혼밥을 비롯한 고독한 생활을 피할 수 없는 집단에게서 신체적·정서적 위험이 발견되는 양극화가 나타난 것이다.

소득 낮을수록 혼밥 비율 높아

이행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건강노화산업단장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실시된 국민건강영양조사의 원자료를 통해 2만여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혼밥 비율이 높았다.
소득 하위집단의 혼밥 비율은 13.1%로, 중하위(9.2%), 중상위(7%), 상위(6.5%) 집단보다 높았다. 이 가운데 1인가구만 살펴보면 소득이 낮을수록 혼밥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은 그대로 재확인되는 한편, 혼밥 비율 수치는 크게 높아졌다. 1인가구 중 소득 하위집단의 혼밥 비율은 66.1%로 상위집단 26.4%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1인가구에서는 이미 혼밥이 타인과 함께 하는 식사보다 더 보편적이다.
전체 조사대상자 중 하루 세 끼를 모두 혼자 먹는 비율은 9%였지만 1인가구에서는 이 비율이 52.3%로 절반을 넘었다.
혼밥과 연관된 건강상의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세 끼 모두 혼자 식사하는 사람의 비만유병률은 34.7%로, 세 끼 모두 함께 식사한 사람(24.9%)보다 높았다.
이 단장은 “12~18세의 청소년을 보면 세 끼를 혼자 식사할 경우 비만유병률이 남녀 각각 46.9%, 22.4%로 다른 연령대보다 높아 향후 비만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혼밥 인구 중에서 비만과 고중성지방혈증, 당뇨병 등 식습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질환을 앓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은 혼밥과 같은 식사행태를 개선해야 할 공중보건 차원의 대책이 필요함을 시사하는 지점이다.
게다가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상의 문제도 혼밥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더 자주 나타났다.
저녁식사를 가족과 함께 하는 집단에 비해 혼밥을 할 경우 남자는 2.43배, 여자는 1.34배 더 우울증을 겪는 비율이 높았던 것이다.
윤영숙 인제대 의대 일산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혼밥만으로 질병을 유발하게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혼자 식사를 하면 한 끼를 때우는 식의 메뉴나 인스턴트 식품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고 식사시간도 빨라 비만과 고중성지방혈증 등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혼밥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이 우울증이나 비만 등 정신과 신체를 아우르는 건강 전반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사회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선미 아주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임상심리학회 부회장)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느끼는 고독감을 덜어주기 위한 인프라 구축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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