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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최민희 대표 인터뷰 - 언론운동의 투사, 자연건강 전도사가 되다 (국회보 5월호)
이름 asamo(관리자) 날짜 2013-05-10 오전 11:06:39
조회수 1951 파일 -

[국회보 2013년 5월호]
언론운동의 투사, 자연건강 전도사가 되다


최민희 의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이화여대 재학 시절 학내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6개월을 보냈다. 노동 현장에 투신하기 위해 구로동 봉제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진보적 월간지 ‘말’의 1호 기자,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사무총장,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대변인을 역임했고 참여정부 시절에는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의 직책을 맡아 언론개혁운동을 주도했다. 사람들은 최민희 의원을 ‘언론운동의 투사’라고 불렀다. 또, 전통육아법으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내용을 담은 책과 자연건강법식 아토피 치료서가 13만권이나 팔린 스테디셀러의 저자이기도 하고, 약 4만 5천 명의 회원을 둔 아이사랑모임 ‘수수팥떡 어머니모임’ 대표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녀를 ‘전통육아와 자연건강의 전도사’로 부른다. 
‘언론운동의 투사와 육아, 자연건강의 전도사’.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은 두 별명을 갖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언론운동의 길을 걷다

언론운동 시절, 언론개혁을 촉구하던 시위현장에서

“1984년 26세였던 저는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소속의 운동권 학생이었어요. 학내 시위 주동 혐의로 6개월 간 감옥에 다녀온 뒤, 동아일보, 조선일보 해직기자들과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모여 만든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서 새 매체 창간을 목표로 젊은 기자를 뽑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지원했습니다. 그게 바로 ‘말’지입니다.” 이른 아침 집에서 나와 노동자복지협의회 등을 돌고 편집회의에 참석했다가 오후 늦게 집회에 참석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게다가 말단 기자였기 때문에 경리, 총무일까지 도맡아 했다. “민주·민중운동 현장을 누비면서 기사를 많이 썼죠. 철거 중인 마을에서 한 달간 살다시피 하기도 했고 자동차 파업을 취재하기 위해 자동차공장 주변에서 잠복하다 운좋게 관련 사진을 입수하기도 했고요.” 경찰의 눈을 피해 숨어서 기사를 쓰는 일도 다반사였다. 


최 의원은 “당시 제도권 언론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민중의 현실을 알리는 일이 그저 좋았다”고 회상했다. “1986년 한국 언론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로 저희가 군부정권의 언론통제책인 보도지침을 폭로한 것이지요.” 이후 약 1년 동안은 잡지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6월 항쟁과 대선, 국민들의 절망감과 간절한 민주화의 열망이 함께 모여 1988년 ‘한겨레 신문’이 창간됐다. 그 뒤 최 의원은 민언협에 남아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한 법, 제도 개선 투쟁, 편파적인 왜곡 보도를 문제 삼는 안티조선운동, 지역언론 지원, 신문·방송 모니터 활동, 시청자참여를 늘리기 위한 운동 등 언론개혁에 힘썼다. 최 의원은 “언론 민주화는 사회민주화의 밑거름”이라고 말했다. 언론이 정상화되어야 나라가 정상화된다는 것이다. “첫 사회 생활을 어디에서 시작하고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인생을 좌우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실은 사실 그 자체를 말하는 거다. 판단은 국민이 한다’는 해직언론 선배님들의 말씀과 원칙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것이 20년간 언론운동에 투신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었지요.” 

 

늦둥이 엄마가 육아 전문가가 되기까지

둘째 윤서를 낳고, 아이 정서를 위해서 한시라도 떨어져 지내지 않았다. 강연도 윤서를 업고 다녔다.

언론운동의 최일선에 서있던 최 의원이 자연건강법을 주제로 책을 내는가 하면 육아관련 책을 낸 사실은 이례적이다. 나이 마흔에 늦둥이를 낳고 키우면서 체험한 자연육아법을 책으로 엮은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는 13만권이나 팔린 스테디셀러다.
“대학졸업 후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해 온 제 마음속에 남모를 생채기가 곳곳에 남아 있었어요. 결혼 후 첫째를 가졌을 때도 언론, 노동운동하느라 제 건강은 물론 뱃 속에 있는 아이의 건강이나, 태교 등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어요. 항상 모든 일을 날카롭게 보고 살았으니, 몸이 늘 긴장해 있었겠지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첫째 아들이 천식과 아토피, 갖은 질병을 달고 사는 거예요. 태교가 아이 성격, 건강의 90%를 좌우한다고 하잖아요. 아이가 아픈 게 괜히 저 때문인 것 같고, 마음이 아팠어요.”


그러던 어느 날 34년 간 옥살이를 하다가 말기 위암으로 출소한 남파공작원 왕영안 씨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자연건강법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 분을 구할 방법을 찾다가 만난 게 자연건강법이었어요. 단식과 채식요법만으로 3개월 밖에 못 산다고 하던 분이 7년 넘게 건강하게 사시다 돌아가셨지요. 그 후 자연건강법을 연구하게 된 거지요.” 
아토피, 천식으로 고생하던 큰 아들에게 자연요법을 꾸준히 실천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무렵엔 딱히 치료법이 없다는 아토피 증상을 거의 치유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둘째 딸을 가졌을 때는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철저하게 자연건강법을 지켰다. 
“건강한 어머니가 건강하게 생활할 때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죠. 둘째를 가진 것을 안 그 순간부터 바로 자연건강법을 실천했어요. 자연주의 식단은 물론 아기가 태어났을 때 생후 3일 단식, 태어나자마자 100분 동안 발가벗겨 두는 것, 보통의 어머니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자연법이지만 용기를 내서 실천하면 틀림없이 튼튼하고 총명하고 바른 아이로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최 의원은 “경험해보니 평생 건강하기 위한 첫 번째 비결은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어머니, 아버지의 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이 놀라운 힘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출산과 육아, 질병을 가진 사람들과 자연요법을 함께 나누는 모임 ‘수수팥떡 어머니 모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수팥떡 어머니 모임’은 회원이 4만 5천명까지 늘어나 ‘자연육아’와 ‘아이 잘 키우기’ 그리고 ‘아이 건강회복시키기’, ‘가족 질병’ 등에 관한 활발한 운동을 펼쳤다. “사람들이 항상 묻습니다. 왜 모임 이름이 수수팥떡이냐고요. 수수팥떡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 지혜가 배어있습니다. 수수에는 칼슘과 양질의 단백질이 듬뿍 들어있고, 섬유질이 많은 팥은 배변을 촉진시키죠. 백일떡을 수수팥떡으로 하는 것도 영양에 대한 어머니들의 이런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가족, 후회 없는 삶을 일깨워주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한 첫 가족여행

최민희 의원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가족들과 처음으로 함께 한 여행 사진”이라고 소개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와 가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던 어머님, 그리고 공부밖에 몰랐던 오빠, 언니에게 저는 어떤 딸, 동생이었을까요? 제가 학생운동 할 때 아버지는 차라리 수녀가 되라고 간곡히 부탁 하셨어요. 머리도 깎여 봤고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지요. 그런 어느 날 제가 학생운동을 한 것 때문에 친척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어요. 제가 가고자 했던 길을 포기해야하나 싶었던 순간, 부모님은 제게 ‘누가 뭐래도 너는 너의 길을 열심히 가면 된다’고 힘을 주셨어요. ‘내 딸이 가는 길은 무조건 옳은 길이다’라고 인정해주셨던 것이죠.” 


후회 없는 효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정신없이 앞만 보고 운동권의 길을 걸어갔고, 가정을 이룬 뒤에는 아픈 아이 돌보느라 정작 부모님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살면서 한번도 아버지, 어머니와 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나’ 싶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제주도행 티켓을 끊었다. “마침 여행가는 날 태풍예보 소식이 들려오는 거예요. 태어나 처음으로 가는 가족여행인데,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아 여행을 강행했죠. 다행히 공항에 도착하니 하늘이 맑게 개더군요. 이 사진이 바로 도착하자마자 기쁘고 설레는 마음에 찍은 가족사진입니다.” 


그러나 최 의원은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보고는 펑펑 울었다. 사진 속의 아버지, 어머니는 젊디 젊은 부모님이 아니라 80~90년 세월을 보낸 할아버지, 할머니였던 것. “항상 말썽만 피웠던 막내딸이 문득 돌아보니 너무 늙어버린 부모님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그때부터 부모님 살아계실 때 후회없는 효도를 해야겠다 마음먹었죠.” 최 의원은 요즘은 일요일엔 무조건 부모님 목욕을 시켜드리고 있다. 부모님의 모습을 눈에만 담아서는 나중에 후회 할 것 같아 목욕을 시켜드리면서 부모님의 체취와 온기를 직접 느끼고 싶어서라고 했다.
 “요즘도 하루하루 ‘나는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몇 번이나 되뇌곤 해요. 재야운동, 언론운동, 그리고 건강운동을 하다가 우연찮게 제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합니다. 내가 경험하고, 얻어온 지혜들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좀더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것, 그게 바로 지금의 최민희가 후회 없이 할 일이겠지요.” 


글_윤성혜 미디어담당관실 사진_임진완 미디어담당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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